미디어 비평가인 더글라스 러쉬코프씨는 후기로 독자에게 트위터 등의 방해를 받지 않고, 책을 끝까지 읽어줘서 고맙다고 한다. 아차! 싶었다. ‘현재의 충격’은 과거 10여년간의 변화의 흐름과 방향성을 꿰뚫는 저자의 통찰력이다. 왜 나는 내 자신에게 일어났던 변화마저 전혀 감지하지 못했던 것일까?
2000년 나는 귀가하면 습관적으로 PC를 켜고 이메일을 확인했다. 2003년 Clie라고 하는 소니의 PDA를 처음 접하고 이메일을 실시간 체크할 수 있는 액티브싱크를 구현하기 위해 여간 노력했던 것이 아니다. 마치 내 자신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시킨다는 느낌으로 말이다. 그래서 블랙베리의 푸쉬 알람에 마치 베타 버젼을 떼낸 것처럼 열광했는지 모르겠다.
불행하게도 현재의 나는 끊임없는 푸쉬 알람 소음속에 시달린다. 너무나도 많은 정보들이 관심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제목으로 Finger Tip을 유혹한다. 심지어 와인앱인 Vivino마저 새로운 소식이 있다며 방해한다. 점차 내게 과거 어떤 사건이나 미래 예측 보다는 ‘현재’의 팩트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패션 브랜드인 Zara는 전세계 카운터에서 지금 어떤 옷이 팔리고 있느냐가 증산 결정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디자인 철학이나 과거 유행은 더이상 요인이 아니다.
아니면 말고 식의 가십성 뉴스가 시선을 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현재’ 나의 관심사를 강요한다. 정보의 호수속에서 치열한 고민보다는 즉흥적인 답변과 멀티태스킹이 미덕이 되더니… 결국 서사적 구조가 무너졌다. 사람들은 현재를 살아갈 뿐, 더이상 패턴을 해석하고,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MMORPG게임은 엔딩이 없다. 네트워크속에서 무한한 시간이 존재할 뿐이다. 어쩌면 나영석PD나 김태호PD가 천재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만든 예능에는 특정한 스토리가 없다. 캐릭터들은 과거로부터의 성장과 미래 발전보다 무한한 현재에 사로 잡혀 있다.
정보의 연결이 심화되다 보니, 혼돈 속에서 생각과 고민은 무의미할 뿐이다. 주식 투자 역시 마찬가지다. 차분히 어떤 회사의 제품이 무엇인지 보고, 시장 영향력을 분석하여 자신만의 시각으로 Valuation하기 보다, 기술적 챠트에 의존해서 혹시 타이밍을 빼앗길까? 전전긍긍하며 로봇들이 트레이드하는 대로 따라갈 뿐이다. 한마디로 생각이 잠겨 버렸다.
이전 글에서 네트워크를 찬양했지만, 일부 수정이 필요할 것 같다. 네트워크는 디지털 자기 복제가 가능한 구조로 바이러스같은 유해 정보가 눈 깜짝할 사이에 퍼지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마이크와 스피커가 붙어 있으면 시끄러운 소리가 나듯, 바이러스는 증폭이 된다. 이제는 일반인마저 가십거리의 대상이 되어 카카오톡 대화의 중요한 소재가 되어 버렸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물리적으로 디지털화되지 못했다. 어떤 글을 읽었다고 머리속에 아카이브가 자동으로 기록되는 것은 아니다. 정보 과부화속에서 뇌의 휴식은 필수이다. 내가 사랑하는 스테이크를 먹기 위해 숙성의 시간을 가지듯, 사람 역시 시간의 속박을 벗어난 생각의 시간이 필요하다. 오랜 기간 고민 끝에 터져나오는 ‘유레카’를 우리는 ‘느린 직감’이라고 부른다. 디지털 분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시간축을 돌려놓아야 한다. 9시 뉴스를 기다리던 저녁 식사 후의 그 인내심이 다시 당신을 붙잡아 앉혀 두어야 한다.
참, 디지털화되었다고 공유가 더욱 활성화되는 것은 아니다. 20여년전, 015B앨범을 정성스럽게 복사해서 친구들과 돌려듣던 기억이 있다. 10여년전, 배낭여행중 호스텔에 가면 깨알같은 보물 정보가 가득한 론니플래닛을 공짜로 읽었던 기억이 있다. 더이상 음악과 전자책은 공유가 어려운 씁쓸한 구조가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