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을 지휘하라

창의성을 지휘하라

픽사는 참 신기한 회사다. 토이스토리로 성공하고, 이후 지속적으로 니모를 찾아서, 몬스터 주식회사와 같은 걸작을 내놓았다. 심지어, 토이스토리2나 카2와 같이 전편을 뛰어넘는 후속작을 선보였다. 마치 리니지 시리즈를 3편까지 성공시키고, 이에 버금가는 히트 게임을 매년 별개로 출시했다고 할까? 궁금했다. 어떻게 지속적으로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제품을 출시할 수 있었는지…

이 책은 86년 픽사를 창업하고 지금까지 이끌고 있는 에드 캇멜의 이야기이다. 꽤나 두꺼운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몰입하여 읽게된건 뜬구름이 아닌 실제 자신의 경험을 진솔하게 들려주기 때문이다. 픽사의 시작은 기이했다. 루카스필름의 일개 그래픽 사업부가 매각을 위해 분사되면서 타의에 의해 창업되었다. GM과 필립스가 각각 자동차 렌더링 혹은 의료기기에 활용할 목적으로 관심을 가졌으나, 조지 루카스의 위자료를 충분히 감당할 정도의 금액에 못미쳤기에 결렬되었고, 스티브 잡스가 인수를 한다. 저자는 사업부를 운영하던담당자에서 갑작스레 회사를 책임지는 경영자가 된다. 그것도 대주주 스티브 잡스 휘하에서 말이다. 저자는 스티브 잡스에게 보고하는 것은 부담스러웠고 종종 좌절감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겁없는 무지와 성공해야 하는 필요성(아니면 바로 파산할 것이라는 두려움에…)의 결합으로 신속히 경영과 관련된 지혜를 습득해 나갔다. 7가지 기억에 남는 그의 지혜를 빌려오자면,

  • 시스템이 아닌 사람이다. 브레인트러스트(수평적으로 스토리에 대해 비평하는 문화)와 같은 픽사의 훌륭한 기업문화 근간이 있었지만, 토이스토리2를 만드는 과정에서 작용하지 않았다. 신예 감독이 지나치게 의존적이고, 독창성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기존의 존 라스터가 맡게 되었고, 그는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참고로 존 라스터는 디즈니에서 아방가르드적인 가치관으로 해고당한 경력이 있다.
  • 리스크를 예방하는 것보다, 직원의 회복 능력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세계는 복잡하고, 미래는 예측 불가능하다. 공포스러운 상황은 발생할 수 밖에 없으며, 해독제는 신뢰이다. 토이스토리2에서, 한 직원이 실수로 2년간의 작업분량의 90%를 삭제했고, 백업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모든 직원이 해결에 초점을 두고, 토론했다. 다른 직원이 육아 재택 근무를 위해, 집 PC에 파일을 백업해두었다고 고백했고, 픽사는 구사일생할 수 있었다. 문제 해결 권한을 위임하고, 실수를 용인하는 문화가 ‘위법적’인 고백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 장편 못지않게 단편 애니메이션이 필요하다. 15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인원이 투입된다. 일이 늘어났지만, 직원들은 Work Scope가 넓어지고, 직원간 유대감이 높아져 오히려 만족도가 높아졌다. 나 역시 반도체 회사인 H사 인수 Deal보다, 게임회사 매각 Deal이 더욱 재미있었던 기억이 난다.
  • 공동체 의식은 필수적이다. 노트데이라고 하는 전직원이 모인 토론의 장에서, 요리 주방장은 갑작스레 워킹런치를 준비해달라는 직원들을 질타했고, 애니메이터는 애완견을 데리고 출근하고 싶다는 동료를 직업윤리관이 없다고 불만을 늘어 놓았다. 계급장을 뗀 진심어린 소통을 통해 직원들은 주인의식을 가지고, 동료 관점에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 운과 기술을 구분해야 한다. 종종 내가 잘해서 어떤 프로젝트가 성공하고, 자만심에 빠진다. 과거의 성공이라는 유령에 사로잡혀 다음 프로젝트를 망치기 일수다. 대다수의 성공은 타이밍과 동료들과의 협업 때문이다. 겸손해야 한다.
  • 직원과 임원 사이에는 벽이 있다. 직원들은 고위 임원이 불편할 수 밖에 없고, 임원이 듣는 현장의 보이스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또한 자신이 믿고자 하는 바만 보이는…(심지어 데이터도…) 것이 사람의 본질이다. 보이지 않는 문제를 파악하고, 그 속성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경영이다.
  • 목표는 뚜렷해야 한다. 픽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제작비를 걱정하여, 예산 절감 10%라는 뚜렷한 목표를 공유하고,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창의성이란 제약이 있을 때 발현된다.

마치 전형적인 한국기업 창의성 고갈에 대한 해결책 같다. 아마도 사람사는 모습이 유사한 까닭이다. 저자는 디즈니에 픽사를 매각하는 순간까지 픽사에 대한 주인의식을 보여준 스티브 잡스(그는 픽사 기업 문화 훼손을 우려하여, 휴일 가족 바베큐 파티 보장 등을 계약서 문구에 넣었다.)에게 저자는 많은 영감을 얻었다.

Ed-Catmull-Steve-Jobs-John-Lasseter

<좌로부터 저자인 에드 캇멜, 스티브 잡스 그리고 COO인 존 라스터>

스티브잡스와 관련된 4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하자면,

  • 픽사 인수를 위한 경영진 인터뷰에서 다른 인수 후보자들이 재무제표와 중단기 목표를 물었던 것과 달리, 잡스는 다른 회사에는 없는 픽사만의 장점이 무엇인지를 먼저 물었다.
  • 잡스는 외부 투자 유치를 목적으로 IPO를 추진했다. 첫번째 목적은 자신의 픽사 투자의사 결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외부 검증을 받기 위함이었고, 두번째 목적은 픽사도 언젠가 맞이하게될 실패를 대비, 자금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 제3자의 눈에서는 독설로 보이지만, 이는 스티브 잡스가 상대의 열정을 끌어내기 위한 Communication tool이었다.
  • 픽사는 86년 창업하여, 95년 토이스토리를 만들기까지 9년간 ‘적자의 시간’이 필요했다. 스티브는 장편 애니메이션에 대한 저자와 존 라스터의 열정과 전문성을 인정하고, 대주주로서 이들을 기다려 주었다.

에드 캇멜은 30여년간 픽사를 이끌었고, 피인수된 디즈니에서도 20여년간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그는 겸손하게 자신의 실수를 고백하고, 이로 인해 얻은 교훈을 이야기한다. 작은 소망으로 이 책을 사람들이 참고하며, 위협 요소에 대해 대처하기를 바란다. 이 도서를 비즈니스 명저라고 감히 칭하고 싶다.

참, 이 책을 읽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빅히어로를 보았는데, 각 캐릭터별 특성과 플롯을 유심히 보며, 내부적으로 직원간 어떤 이야기가 오갔을지 조금은 상상이 되며, 씩 웃음이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