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SNS 논란이 벌어지는걸까?

몇일전 있었던 기성용 파문에 관한 생각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얼마전 LTE-A가 상용화되었다. 용산에서 14,400bps 모뎀을 사다가 볼트로 끼워, 삐익 소리와 함께 마음을 졸이며 통신했던 기억이 불과 몇일 전 같은데, 지금은 무선으로 HD급 영상을 지하철에서 스트리밍으로 보게 되었으니, 통신망의 용량과 속도 증가 속도가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지금까지는 망진화의 분노의 질주를 컨텐츠의 질(화질/음질) 발전으로 대부분 커버했다. 소비자들은 고음질과 생생한 화질을 위해 단말기를 바꾸거나, 통신사를 바꾸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비용을 기꺼이 지불했다.

컨텐츠 양의 증가 역시 망진화를 따라잡는데 일부 기여했다. 야후! 기반 인터넷 시절, 컨텐츠 생산자는 소수의 작가와 몇몇 인터넷 기업들로 한정되었다. 과감하게 눈을 돌려 고전과 인문학에서 스토리를 찾고, 컨텐츠 소비자들을 생산자로 역할을 바꾸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다. 개인이 손쉽게 홈페이지를 개설할 수 있는 미니홈피나 WYSWYG(위즈윅, What You See is What You Get)기반의 툴은 이러한 노력의 일부였다. 나아가 RSS와 구글을 매개로 컨텐츠간의 상호작용은 새로운 스토리를 창출했다. 마치 DJ가 기존의 음악을 바탕으로 새로운 음악 Mix를 만드는 것처럼.

그러나 최근 컨텐츠 증가량은 망진화 속도를 커버하기엔 부족하다. 이는 컨텐츠의 단위가 문자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에 기인한다. 16년전 PC통신 게시판에 올린 글과 지금 카카오톡으로 주고 받는 대화는 모두 2 Byte 기반으로 같아서, 컨텐츠 폭증은 곧 문자 ‘량’의 폭증이나, ‘무어의 법칙’ 속도로 몇편을 창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기서 비롯된 망 사업자의 ‘수요’와 컨텐츠 생산자의 ‘공급’간의 불균형은 돈의 흐름을 불렀고, 인터넷 기업들은 대부분 사용량에 주목했다. 메신저라는 플랫폼 위로 사용자들을 소통하게 만들고, SNS라는 아름다운 작명하에 사용자간 연결을 확산시켰다.

주목해야 할 것은 SNS다. 몇번을 수정하고, 고민해서 생각을 Publish하는 블로그와 달리, SNS는 일상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공유를 장려한다. 본질이 짧은 시간속 대량생산에 있기 때문이다. 손쉬운 공유는 생각없이 던진 말의 확산을 촉진하고,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 이슈는 그 자체가 컨텐츠화된다. 기성용의 발언 자체를 옹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가 통신망 위에서 Byte를 먹고 사는 괴물에게 희생된 건 아닌지? 우리는 Speak-out 자체를 위해 누군가를 Byte하는데 익숙해져 있는건 아닌지? 결국 우리가 점차 포드 공장의 노동자가 되어가는 건 아닌지 자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