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Ego가 심히 약한 편이다. 명사의 강연을 듣거나 자서전을 보면 내 인생을 줏대없이 종종 그들 인생에 투영하여 End Picture를 그리곤 한다. 대학교때 들었던 정태영 사장의 강연은 전공에 대한 관심 방향까지 바꾸었으니 말이다. 중학생 시절 아버지 책장에 꽂혀 있어 우연히 읽었던 ‘세계는 넓고 한일은 많다.’는 당시 우리 집의 자동차였던 ‘누비라’가 얼마나 위대한(?) 차였는지 깨닫게 해준 동시에, 대학 목표를 바꾼 계기가 될 정도로 그의 자신감있는 한 문장 한 문장에 매료되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역마살이 끼었다고 혀차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고시나 학점보다 해외 그리고 세계로 눈을 돌렸다. 그런데 막상 대학에 와보니, 상경대학의 ‘대우관’에 대해서 삐딱한 시선이 느껴졌다. 분식회계, 과잉부채 그리고 사기꾼이란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고, 1학년 말 11월 마침내 대우그룹이 부도가 나면서, 그의 이름은 터부시 되었다.
그리고 14년이 지나 그의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되었다. 기자인 친구 소개로 읽게 된 ‘김우중과의 대화’를 통해서 말이다. 아무래도 그의 세계관을 어릴 적부터 신봉했던 입장이었기에, 그와 대우그룹의 운명에 대해 심심한 아쉬움을 느낀다. 일방적인 DJ정부의 희생양이라고 부르기는 어렵지만, 그는 정부의 신흥관료(이헌재, 강봉균)와의 힘겨루기에서 밀렸다고 보는 편이 옳다. 그는 수출을 통한 IMF부채 상환을 주장했고, 신흥관료는 자산 매각 등 기업구조 조정을 통한 상환을 주장했다. 대통령 앞에서도 거침없는 논쟁을 하며, 두가지 View는 팽팽히 맞섰지만, 결과적으로 DJ는 관료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후 IMF를 조기졸업할 수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비정규직 같은 사회 구조적 문제와 외환은행/론스타 딜과 같은 헐값 매각 후유증 등을 낳았다. 김우중 씨의 주장은 당시 금융위기는 기업이 아닌 금융권의 문제이며, 아시아 국지적이고, 유럽과 미국이 호황이라 1달러당 1,800~2,000원대의 환율로 수출 호황을 이끌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2000년에는 기업들의 긴축 Drive에도 불구(내부 구조조정하기 바빴지, 외국에 물건 제대로 팔 여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수출은 19.9% 성장하여 11.8Bn 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닐 퍼거슨 하버드 경제학자는 자산 매각을 통한 위기 극복을 주장했으나, 정부는 달러를 찍어내며 시티은행, GM 등에 천문학적 지원금을 퍼부어, 결국 이들을 Turnaround 시키고, 투자금까지 회수한 사례는 씁쓸한 뒷 맛을 남긴다. 코너에 몰렸을 때, 악으로 벗어 나면 승리의 DNA가 축적된다. 만약이라는 가정이나, IMF때 오히려 공격적으로 투자를 하고 수출을 해서 위기를 극복했다면, 이어진 2008년 금융위기에서 ‘미국/유럽 저가 Shopping’을 즐기며, 좀더 슬기롭게 대처하지 않았을까? 그때의 움추림으로 인해, 현재의 저성장 기조 그리고 일본을 닮아간다는 이야기를 듣는지도 모르겠다. 참, 사족으로 IMF때 처음 금모으기 운동을 전개한 곳이 대우실업이었다고 한다.
중학교때는 ‘누비라’ 차가 그렇게 Cool했는데, 지금 GM대우차는, 아니 쉐보레 차는 그다지 눈길이 가질 않는다. 이는 분명 GM의 마케팅 실패다. 아니 GM은 대우자동차를 잘못 인수해서, 오히려 기업가치가 추락한 케이스라고 나는 보았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 Deal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오히려 GM은 대우자동차를 인수하지 않았다면 더 큰 위기를 맞았을 것이다. 바로 중국 시장 때문이다. 중국 자동차 시장이 비약적으로 성장을 하던 90년대 후반, GM은 중국에서 자동차를 팔려고 해도, 미국 특유의 기름을 많이 먹는 대형 세단/SUV 이외에 경쟁력있는 모델이 없었기에, 적당한 모델을 찾지 못했다. 이에 GM은 이전 JV 상대였던 대우자동차를 재차 찾아가, 지분 투자를 미끼로 도움을 요청한다. IMF전에 밸류에이션 금액까지 제시했다. 그리고 IMF에 이어, 정부의 대우그룹에 대한 신뢰도 저하 등 발언에 이어진 대우그룹의 부도로 GM은 당초 대우자동차에 제안했던 가격은 0원으로, 신규 투자를 통해 대우자동차의 경영권을 정부(채권단)로부터 인수한다. 그리고 대우차를 중국에서 Drive한다. 뉴비라는 라세티 후속 모델로 페이스리프트한 수준으로, 마티즈는 스파크로 이름만 바꿔서 말이다. 그 결과 대우차가 상하이GM 매출의 70%에 달했다고 하니 GM으로서는 안도의 한숨을 쉴만 했다. 안타까운 사실은 GM매각 전, 채권단 관리에 있을 때, 마티즈의 설계도가 대만을 통해 유출되어, 중국의 체리QQ가 탄생했다는 점이다. 체리QQ까지 고려하면, 중국 자동차 시장의 급성장을 누리는데, 동유럽에서 인정을 이미 받은 대우차 자산이 큰 몫을 했다. 대우그룹의 대부분 자회사들은 오늘날까지 잘 나가고 있다. 대우건설, 대우중공업(현 두산인프라코어) 및 대우증권 등 말이다. 그래도 대우자동차는 내수 하청기지로 전락한 실패 케이스라고 생각했는데, 중국을 그렇게 오고가며, 상하이GM을 보고 대우차라는 걸 눈치를 못챘다니… 나의 우둔함을 탓할 뿐이다.
김우중 씨는 여전히 꿈이 많다. 그때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고 외치며, 손수 길을 보여준 것처럼, 여전히 젊은이들에게 뼈있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작은 시도를 아끼지 않으며 작은 성공이라도 자꾸 일궈, 이를 바탕으로 자신감을 가지고, 더 큰 목표를 향해 도전을 하라고 한다. IMF때 잔뜩 움추려 들었던 우리 자화상처럼, 조직에서 머리 숙이고 있는 Junior들에게 꼭 필요한 말이 아닌가 싶다. 그 외에도 그의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 구상, IMF 시절 신흥관료들의 대우를 향한 압박 그리고 아프리카를 필두로 한 그의 세계 경영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이제라도 털어놓아 속이 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