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마리아인들-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라는 책. 유쾌한 뜨끔함을 주었다. 자유주의 경제학의 달콤함에 취해있던 내게 말이다.
첫번쨰 뜨끔함은 자유 무역을 주장하는 국가들이 정작 자신의 성장은 강력한 보호주의를 통해 이루었다는 것이다. 영국은 해리7세-당시의 ‘하이테크’였던 모직물 제조업을 보호하기 위해, 원모의 수출을 금지하였고, 인도 등 식민지의 자생적인 경제활동을 제한함으로써 자국의 이익을 도모했다. 미국은 1920년까지 높은 관세로 영국 등의 국가에 경제적으로 종속되는 것을 막았고,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을 펼친 이 시기에 높은 경제 성장률을 올렸다. 한국의 현대자동차가 승승장구하게 된 것은 일찍부터 GM, 도요타 등과 경쟁을 하였기 때문인가?
두번째 까질함은 특허권, 지적재산권에 대한 환상이다. 사채업자가 한 가난한 어머니에게 돈을 빌려주고, 몇백배의 이자를 요구하는 것과 같다고 해야 하나? 한국은 중국, 베트남 등지에서 한류 스타들의 지적재산권(Intellectual Propoerties Right)가 침해되는 것을 우려하고, 경고하지만 한국의 지식 계층은 원서를 복사하여 정독함으로써 선진국과의 지식 차이(gap)를 줄일 수 있었다. 네덜란드 필립스 전자는 에디슨의 전기 관련 특허를 자국에서 무시(?)하여 주었기에, 더 나은 기술을 축적하여,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Aids약을 아프리카에서는 공짜에 가깝게 팔아야 한다는 인도적인 주장은 잠시 접어두고라도…지적재산권이 선진국들이 후진국의 도약을 막는 장애물로 사용하는 현실이 과거를 망각한 이기적인 합리화란 사실이 머리를 스쳤다.
세번째는 공기업의 민영화에 대한 다른 View이다. 국가는 국민 1인에게 1표를 부여하고, 기업은 1주식당 1표를 부여한다. 국가는 공적이고, 기업은 효율적인 반면, 국가는 덜효율적이고, 기업은 매마를 정도로 덜 공익적이다. 효율성을 위해 사회적으로 최근 ‘당연시’ 되는 공기업(심지어 자연독점산업과 필수적인 서비스 제공 기업까지도…)의 민영화는 공익성을 잃는 trade-off이다. KT를 견제하기 위해 데이콤을 설립한 것처럼 국영기업간의 경쟁을 유도한다던지, 민영 감시 기관을 두어 부정부패를 방지한다던지의 다양하고도 창의적인 접근은 어떨까?
마지막으로 국민성(문화)은 경제성장을 Drive하는가?이다. 아프리카/동남아 등 날씨가 더운 국가들의 국민들은 절대 근면해질 수 없고, 경제 성장을 스스로 Drive하여 이룰 수 없을 것이란 나의 편견은 일본인, 독일인들이 19세기 바로 그런 모습이었다는 말에 산산조각났다. 문화는 절대 경제 성장의 배경이 될 수 없다. 한국의 유교는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게 해준 발판인 동시에, 지나친 권위주의로 한단계 도약을 하지 못하게 막는 장애물이기도 하다.
정리를 하자면, 자유주의 경제학과 보호주의는 이기주의라는 큰 틀 하에서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며, 효율적 경쟁이란 같은 수준에서 트레이딩을 받은 선수들이 평평한 축구장에서 경기를 벌일 때 가능하다라는 점이다. 너무 비유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