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경쟁 그리고 검증의 중국 정치.

지난 17대 전인대를 보면서, 많은 이들이 ‘블랙박스’에서 차기 지도자가 결정되는 중국의 정치 시스템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비민주적’이다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나는 이를 ‘비서구적’일뿐, 어느 정도 경쟁 그리고 검증이 들어있는 합리적인 정치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마오는 운명의 라이벌, 장제스(대만 건국 총통)와 덩샤오핑은 화구오펑과의 경쟁에서 이겨내어,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경쟁의 키워드는 ‘혁명’, 다소 불편하다면 ‘혁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장쩌민은 후야오방과 자오즈양과의 파워게임에서 ‘개방’이라는 키워드로 승리했고, ‘군부’ 양씨 형제의 도전, ‘북경파’ 쳔시통의 도전도 이겨냈다. 그리고 자신의 세력인 ‘상하이방'(上海帮, Shanghai Clique)을 구축했고, 동부 해안을 중심으로 한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

후진타오는 상하이와 같은 도시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곱상한(?) 외모와 달리, 간수성, 티벳 등 시골에서 대부분의 정치 생활을 보냈다. 놀랍게도 덩샤오핑은 후진타오를 장쩌민의 후계자로 못밖아 버린다. 상하이방은 경쟁이 사라지자 부패하기 시작했고 동부 중심의 경제 성장은 심각한 빈부 격차를 낳았다. 장쩌민과 정반대의 소위 밑에서 부터 빡시게 긴 후진타오 그리고 원자바오가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인물임을 덩은 예견했던 것일까? 황쥐의 죽음으로 상하이방은 나이 제한으로 물러난 장쩌민 만큼이나 쇠약해졌고, 후진타오의 창창한 앞날을 의심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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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Chinese contemp. politics 강의록, 그림은 후진타오와 원자바오가 17대 전인대에 영향력이 강화된 것을 재미있게 표현한 그림, 제일 좌측의 천량위는 부패 혐의로 물러났고, 황쥐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당했으며, 장쩌민은 자신의 상하이방의 영향력 악화를 지켜봐야만 했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부분은 바로 ‘시진핑’의 등장이다. 누구나 넥스트 후진타오로 그와 비슷한 커리어(랴오닝에서 빡시게 큰…)의 리커창을 예상했고, 실제로 후진타오도 그렇게 언급했다. 상하이방과 태자당(고위 관료의 자제들의 비공식적 파벌)의 지지를 받고 있는 황태자, 시진핑. 더군다나 그는 리커창보다 높은 위치에 랭크가 되어 있었다.

이는 두가지 의미를 지닌다. 장밋빛 후진타오의 17대 국정에 긴장감을 불어 넣기 위함이고, 5년후 18대 전인대에서 시진핑, 리커창 둘중 한명이 당서기로 올라서게 될 텐데, 시진핑의 위치가 다소 높임으로서 역설적으로 후진타오의 지지를 받는 리커창과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도시 중심의 급격한 경제 성장과 지속적인 과학적인 발전이 공존하는 균형 그리고 다음 지도자에 대한 충분한 경쟁과 검증 단계. 마지막으로 속일 수 없는 ‘나이’로 현 지도부의 임기를 못박아 버린 합리성. 이것이 바로 ‘비서국적’이더라도, 자신의 가치대로 발전하고 있는 중국 정치의 힘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