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그리고 애플 TV의 등장.

스티브 잡스의 프리젠테이션이 있는 날이면, 법원 연설이던지, 인터뷰이던지,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 연설이라던지 상관하지 않고 일단 즐긴다. 어찌보면 약장사같은 그의 프리젠테이션 속에서 ‘it’s really cool!’을 연발하는 그의 말을 듣다보면, 정말 애플의 디자인과 설계는 아름답다는 신념에 사로잡힌다.

미국시간으로 10일 오전 8시, 맥월드 엑스포에서 스티브 잡스의 키노트 연설이 있었다.

애플은 먼저 코드명 itv에서 애플tv로 바뀐 작은 컴퓨터를 내놓았다.

아이팟과 애플TV의 전략은 잔인하게도 똑같다. MP3 플레이어 시장이 이미 나와 있는 상태에서 애플은 아이튠스 컨텐츠와 함께 아이팟의 성공을 이끌 수 있었다. 이제 스티브 잡스는 온라인 비디오 다운로드 시장을 보았다. 음악의 경우, 방에서 좋은 오디오에 플레이시키고, 드는 느낌이나 흰색 이어폰을 끼고 밖에서 듣는 아이팟의 느낌이나 필자같은 막귀의 경우에는 그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다. 하지만 비디오의 경우는 다르다. 5.1채널에 둘러 쌓여, 50인치 디지털 TV앞에 소파에 앉아 보는 영화의 느낌과 아이팟이 아무리 커진 들, 그 작은 스크린으로 보는 영화의 느낌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애플은 디즈니에 이어 파라마운트의 영화 그리고 NBC 등의 TV드라마 다운로드 시장의 확대를 바라보며, 소비자를 거실로 이끌어 내야 했다. 사실 시장에 이미 국내 중소기업에서 개발한 무선 DIVX플레이어는 나와 있고, 옥션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손쉬운 인터페이스와 컨텐츠가 없다. 알면서 당하는 것이다.

정말 이쁘다. 그리고 아이팟의 미래다. 애플은 아이폰이라고 하는 휴대폰도 내놓았다.

GSM 망에서는 휴대폰만 있으면 자유롭게 SIM카드를 교환하면 자유롭게 사업자를 교환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유럽에서 쓰던 핸드폰을 동남 아시아에 가서 원가 0원의 SIM카드만 꼽으면 후불식 방식으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한편으로 도난도 쉽고,(필자는 지난 일년간 영국에서 1회, 홍콩에서 3회 휴대폰을 잃어버렸다!) 복제 폰의 우려도 높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은 우선 핸드폰 디자인을 고른 후, 가격을 비교해 보고 망을 결정하지 않을까? 바꾸어 이야기하면, 국내와 달리 핸드폰 공급자(노키아, 모토롤라, 삼성 등)의 위상이 망 사업자(보다폰, 허치슨, 오렌지, 차이나 모바일 등)보다 사업상 우위에 있지 않을까는 의문이 드는데, 이런 갭을 줄여준 것이 바로 국내에서는 금지되어 있는 보조금 제도와 유통망이다. 망 사업자간의 과열 경쟁으로 국내에서는 40~50만원에 육박하는 휴대폰을 장기 가입자로 유도, 3만원대에 제공해준다. 국내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삼성 리빙플라자를 유럽에서도 기대하기는 힘들다. 삼성 휴대폰을 보다폰이나 오렌지 등의 사업자의 유통 샵에 전시해놓지 않는다면, 팔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즉, 휴대폰 공급자는 사업자의 눈치를 봐야 하고, 로비를 펼칠 수 밖에 없다. WIFI를 활용한 무선 인터넷, 블루투스의 발전 속도가 늦은 이유가 여기 있다. 무선 인터넷 과금에 도움이 되지 않는 기술은 망사업자 입장에서는 내 목을 죄는 기술이다.

모토롤라의 레이저가 디자인을 바탕으로 망 사업자를 뛰어넘어 불티나게 판매된 전례가 있다면, 애플은 디자인과 기술력 모두를 가지고 일단 싱글러를 통하고 추후 확대를 통해 망사업자를 압도하고자 하는 전략으로 보인다. 사업자의 목을 죌 수 있는 WIFI 무선 인터넷(쉽게 말하면 넷스팟 존 들어가면, 별도의 무선 인터넷 접속 없이 무선 인터넷을 무료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과 블루투스 2.0기술을 과감히 차용했고, 모토롤라가 아이튠스 폰을 내놓을 때도 사업자의 눈치를 보며, 곡 제한을 둘 수 밖에 없었는데, 애플은 한발 더 나아가 5세대 아이팟보다 10배는 아름다운 와이드 스크린에 앨범 커버 플로가 제공되는 기능을 달았다. 아이폰으로 멜론과 같은 네트워크에 접속, 접속료를 내고 음악을 다운받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애플은 소비자에게 보조금의 환상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했다. 한국 휴대폰 사용자들은 정부의 압력으로 이를 벗어버린지 오래이지만, 애플은 시장 논리로 이를 풀려고 한다. 망 사업자가 내건 달콤한 현실의 유혹에서 멋어나 기술의 한계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매달 통신비로 가랑비에 옷젖지 말고, 나오라고 요구하고 있다.

얼마전 LG전자에서는 프라다폰을 출시했다. 디자인면에서 절대 밀리지 않는다. 삼성전자의 음악 기능도 기술적으로 애플의 그것을 못따라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은 애플과 같이 망사업자를 뛰어 넘는 포지션을 취할 수는 없다.

애플은 충성도가 강한 고객들과 아이팟의 성공으로 말미암아, 전세계적인 유통망을 가지고 있다. 이들을 통해 아이폰은 공급될 것이다. 저질스러운 망 사업자의 유통샵 신문 광고에 아이폰의 디자인을 더럽힐 필요를 못 느낀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신제품 발표를 하겠다고 공언했던 스티브의 키노트 연설이 끝났다. 1984년 맥킨토시가 UI를 바꾸고, 2001년 아이팟이 음악 산업을 재편한 것 처럼, 두 신제품은 세상에 큰 임팩트를 줄 수도 안 줄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공 여부를 떠나, 기술적 차별성을 뛰어넘어, 시장에서 유일함(uniqueness)을 유지할 수 있는 그들의 전략이 무서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