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배넌과 국가관

미국 보스턴에 오자마자 충격적인 뉴스를 접했습니다. 샬롯빌에서 백인우월주의자들과 반대 세력이 충돌하여, 헤더 헤이어라는 젊은이가 사망한 소식이었습니다. 놀라운 점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응이었습니다. 그는 즉각적으로 샬롯빌에서의 차량 돌진을 테러라고 규정짓지 않고, 다양한 이해 관계가 얽혀 있다고 기자회견에서 답변했습니다. 뉴욕타임즈와 CNN 등 언론은 10분 단위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판 성명을 쏟아 냈습니다. 트럼프가 여론과 맞서게 될 것을 알면서도 그런 언행을 보인 점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유심히 살펴본 결과, 트럼프의 ‘다양한 이해관계(Many sides)’라는 발언 뒤에는 스티브 배넌이라는 백악관 수석 전략가가 자리하고 있더군요. 우리나라 언론에도 극우주의자/백인우월주의자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트럼프 배후에서 자신의 정치관/세계관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배넌은 지난 2월 타임지 커버를 차지했습니다.>

스티브 배넌의 삶은 정치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버지니아 공대를 나와, 해군에서 7년간 복무를 했고, 골드만 삭스에서 일했습니다. 미디어 관련 M&A 업무를 주로 했고, 아예 본인이 나와서 ‘배넌’이라는 이름의 미디어 전문 투자 은행을 차립니다. 이 부티크 IB는 시트콤 Seinfeld 관련 투자로 대박을 쳤고, 이후에 소시에트제너럴에 매각이 됩니다. 해당 딜로 배넌은 평생 먹고 살 부를 축적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참, 배넌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 동료들에 따르면, 그는 교실에서 단연 돋보이는 천재였다고 하네요. 여기까지 전형적인 미국 상류층의 삶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2001년 9/11은 배넌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 줍니다. 이후 그는 미국 역사책과 철학 그리고 정치 고전 등에 빠져, 니체부터 무정부주의까지 다양한 생각을 접목하며, 자신만의 철학을 형성합니다. 그리고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고, 인터넷 언론을 운영하며 시민들과 소통하며 점차 생각을 구체화 해나갑니다.

정치

그는 대안우파(Alt Right) 입니다. 오바마/민주당에 대한 비판은 여느 우파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는 특히, 백인 노동 계층에 주목합니다. 사실, 그들은 대부분 민주당을 지지해 왔습니다. 그런데 금융 위기 이후, 오바마는 대규모 인프라 투자 등을 통한 일자리 창출 대신, 소수의 금융 기관 지원에 세금을 쏟아 부으며, 이들에게 실망감을 안겼습니다. 더욱이 난민, 불법 이민자들에 대해 오바마 정부가 ‘관용’을 베풀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인터넷 언론에서 몸담고 있으면서, 투표 계층의 마음을 정확하게 간파한 그는 이들을 타겟으로 ‘일자리 창출’, ‘Make America Great Again’ 캠페인을 적재적소에 펼쳐 나갑니다. 이후, 오바마케어에 대해서는 재정에 부담을 주어 젊은 세대에게 큰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자유 무역주의가 미국의 양질의 일자리를 빼앗았다고 자극합니다. 그리고 이겼습니다.

한편, 대안우파는 뉴라이트나 네오콘과는 다릅니다. 보통 기성 정치에 대한 반발은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좌파쪽에서 일어나기 마련인데, 그는 특이하게도 우파에서 제3의 길을 모색했습니다. 그는 부시 정부에 대해서도 비판을 쏟아냅니다. 미국의 쓸데없는 간섭으로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고, 이것이 국가 재정을 위기로 몰았다는 것이 이유죠. 때문에 네오콘의 대부인 맥케인과 같은 해군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부딫히곤 합니다. 더불어, 공화당 역시 귀족으로 이뤄진 이기적 집단으로 묘사하며, 미국의 전통 가치인 국가주의 그리고 기독교주의를 ‘자유’라는 미명하에 훼손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미국이 청교도 정신으로 돌아가야 된다고 믿습니다. 미국의 역사를 보면, 과거 독립 이후에 보수적이었습니다. 이곳 하버드에서도 교수와의 관계, 학교내에서의 예절 등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과거 얼마나 딱딱한 곳이었을지 짐작이 됩니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전후 세대들(53년생인 그 역시 해당 세대에 속합니다.)이 부모 세대의 근면과 희생으로 이뤄낸 호황을 등에 엎고, 이러한 가치를 망쳤다고 생각하죠. 젊은 세대는 미국의 독립 정신 대신에 ‘자유주의’ 그리고 ‘개인주의’로 포장된 마약, 동성애, 히피 그리고 문란한 성생활을 선물받았고 정신을 못차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충돌이 일어납니다. 똑똑한 민주당은 미국 남부 전쟁의 잔재라며, 로버트리 장군 동상을 지난주 철거합니다. 나아가 더많은 역사적 유물 혹은 잔재를 없애 차별없는 깨끗한 도시를 ‘지금’ 구축하겠다고 합니다. 당연히 ‘미국의 역사와 가치’를 중시하는 이들과 충돌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철거에 반대하는 이들을 이분법적으로 네오 나찌 그리고 백인우월주의자라고 부릅니다. 물론 멍청한 그들도 있었습니다. CNN이 그들의 사진을 계속 보도하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네오 나찌 그리고 백인우월주의자 이외의 철거 반대자를 ‘다양한 이해관계’로 두둔하고자 했으나, 성난 언론이 이를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스티브 배넌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지지해준 이들을 지켜주고자 했으나, 어쩌면 민주당과 미국 언론이 짜놓은 프레임에 걸린 느낌입니다. (그렇다고 인종차별주의자 그리고 혐오주의자들을 두둔하는 것은 아닙니다.)

요약하면, 그는 정치적으로 제3의 길을 걸으며 기존의 민주당과 공화당 그리고 기성 언론과 싸우고 있는 느낌입니다. 제3의 길의 목표는 미국 가치의 부활이죠.

경제

앞서 자유 무역주의가 미국내 양질의 일자리를 빼앗았다고 언급했는데요, 그는 과거 정부가 미국이 부국이란 이유로 외국과의 협정에서 희생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기업과 국가가 충돌하는데요. 애플은 똑똑한 이민자들을 고용해서 기술 개발을 하고, 중국에서 폭스콘을 통해 아이폰을 생산해서 미국 소비자들에게 판매합니다. 기업과 투자자는 자유무역으로 이익을 보지만, 국가 바운더리에서 보면 미국은 손해를 봅니다. 심지어 조세회피 지역을 활용해서 세금조차 제대로 내고 있지 않죠. 그는 트럼프와의 대화에서 경제보다 국가가 상위 개념이라고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더이상 양질의 일자리를 중국 폭스콘이나 인도 아웃소싱 기업들에게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의지 뿐만 아니라, 법인세 인하와 같은 당근도 제시하고 있구요. 기업을 미국으로 되돌려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이 그의 경제 정책의 핵심입니다.

이곳 학생들과 무인 자동차에 대해서 논의한 적이 있는데요, 하나같이 인프라는 어떻게 구축하냐고 물어봤습니다. 왜 인프라스트럭쳐가 중요하지? 자문을 했다가, 2008년도에 시카고-뉴욕-보스턴을 자동차로 운전하며 험란(?)한 고속도로를 보고 잠이 확 달아났던 기억이 났습니다. 이곳 보스턴의 도로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무인 자동차가 제대로 운행되기 위해서는 미국의 도로 인프라 개선이 필수입니다. 배넌과 트럼프가 무서운 점이 이를 정확히 읽고 4차 산업 혁명과 더불어서 사회 인프라를 건설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FED가 금리를 인상하지 못하는 현 시점이 저금리를 백분 활용하여 미국의 시스템을 한단계 위로 끌어 올릴 수 있는 적기라고 본 것이지요. 이 과정에서 일자리 창출은 덤입니다.

<대학 앞 도로 사정도 다른 도로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외교

그는 9/11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슬람을 엄청난 위협으로 생각하며, 미국이 곧 또다른 9/11 위기에 직면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예방해야 할까요? 간섭을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지난 4월 미국의 시리아 폭격에 대해서 배넌이 반대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자꾸 간섭을 하다보니, 증오가 싹트고, 이것이 IS의 양분이 된다는 주장입니다.

한편, 이슬람과 중화주의가 확대되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를 합니다. 이들이 팽창하는 것 역시 미국에 위협이 됩니다. 해법으로 그는 민족주의의 대두를 주창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영국의 EU 탈퇴를 지지한 배경이 여기 있습니다. 각국이 민족주의로 무장하면, 자연스레 이슬람과 중화주의 팽창이 억제됩니다. 그리고 미국은 민족주의로 뭉쳐진 강력한 국가와 동맹을 유지하면 힘의 균형이 이뤄집니다. 왜 일본이 군국주의로 무장하려고 하고, 미국이 이를 암묵적으로 지지하고 있는지 이해가 됩니다.

한국에 미치는 영향

단순히 미국과의 적자 규모가 얼마인지는 중요해 보이지 않습니다. 배넌은 구체적으로 한국, 중국 등 아시아를 언급하며, 이들이 일자리를 빼앗아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봅니다. 즉, 한국에서 삼성 휴대폰, 현대 자동차를 생산해서, 미국 소비자들에게 판매를 하는 현 경제 구조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의 문제 인식을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까요? 농업 그리고 군수 산업 등 다양한 관점에서 뒤틀린 생각을 풀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북핵과 관련해서 배넌은 얼마전 충격적인 말을 했습니다. 북핵 동결과 중국의 북한 컨트롤에 대한 대가로 주한 미군 철수 카드를 북한에 제시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서울이 북한의 군사적 볼모로 잡혀 있기에, 김정은과의 협상에서 전쟁을 할 수 없는 미국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물론, 한국전쟁 승리를 훈장처럼 생각하는 공화당 네오콘과 주한 미군의 전략적 의의를 중시하는 미군의 입장을 고려할 때, 해당 카드는 실제 실행으로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의 미국 우선 주의 그리고 민족주의 지지 성향이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불확실한 것도 사실입니다.

배넌은 인터넷을 잘 활용해서, 상상 이상의 국가관을 구축했습니다. 그의 생각, 언행은 외국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할 정도입니다. 물론 실행까지는 워싱턴을 설득해야 하는 문제들이 남아 있으나, 현 시점에 분명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기존 백악관에 없던 최고 전략가 자리를 만들어 그에게 안겼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번 샬롯빌 사건으로 민주당과 언론의 덫에 걸려 들었으나, 트럼프는 그의 철학을 늘 염두해 둘 것입니다.

참조: What does Steve Bannon want? NY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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