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IB의 의미

AIIB는 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亚洲基础设施投资银行)로 중국 주도로 '15년말 출범을 목표로 하는 명칭 그대로 아시아 인프라 수준의 제고를 위한 국제 기구다. 낙후된 인프라 수준을 끌어올리겠다는 자선적 아이디어에 미국과 일본이 결사 반대를 한 이유가 무엇일까? ADB,IMF 등 기존 기구를 통해 지녔던 아시아 개발의 기득권을 중국에 빼앗길까 노심초사해서인가? 겉으로는 투명하지 못한 지배구조에 대한 우려로 반대하고 있지만, 나는 '태평양 시대'의 종점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사우론의 눈‘처럼 중국의 시선이 태평양에서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과거 중국은 미국, 일본 및 한국 등과의 투자 협력 혹은 무역을 통해 두 자리수의 경제 성장률을 시현했다. 호주의 원자재를 수입하고, 한국과 일본의 기술력과 자본으로 가공을 하여, 미국으로 수출하는 ‘세계의 공장’ 모델은 전세계 투자 자금을 흡수하며 엄청난 성장을 거뒀다. 브라질, 인도 등의 거센 도전도 베이징과 상하이의 마천루 앞에서는 초라했다. 그러나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환태평양 경제가 바뀌기 시작했다. 한국과 일본은 고령화 심화로 중국 공산품에 대한 소비가 주춤하기 시작했고, 미국은 제로금리 정책으로 중국인들이 피땀흘려 거둬드린 달러를 종이로 전락시켰다. 소위, 환태평양 경제권이 삐걱대기 시작했다. 중국은 태평양 국가와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서도(BATNA) 대안 모색이 필요했다.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다보면 중국의 지원으로 건설된 축구 경기장을 손쉽게 볼 수 있다. 아프리카에는 중국인들이 무상에 가깝게 건설해준 수많은 도로가 있다. 중국은 독자적으로 서쪽으로 눈을 돌리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성과가 썩 좋지 않았다. 태평양의 바다를 건너듯, 유럽/아프리카까지 부드럽게 실크로드를 건너고 싶지만, 소위 ‘스탄’국가들의 내부 인프라와 중동의 사막은 큰 장애였다. 중국 독자적으로 개선시키기에는 한계가 있고, 중국 내부적으로도 서부쪽 외국 개발에 대해 베이징과 상하이를 설득시키는데 부담이 되었다.

중국은 홀로 인프라의 개선을 이끌기 보다 세계 국가들과의 협력을 선택했다. 향후 중장기 경제 성장을 담보하기 위해서 ‘일대일로’를 함께 건설하자는 비전을 내세웠다.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뒤도 안 돌아보고, AIIB 가입을 결정했다. 많은 인구에도 불구, 벵골만에 고립되어 있던 인도 역시 기꺼이 AIIB에 합류했다.

한국 역시 장고 끝에 합류를 결정했다. 장고 이유는 미국의 눈치보다는 유럽/아프리카-아시아 간 실크로드에서 소외를 우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은 가입 신청에도 불구, 형제의 나라인 중국에 거절당했다. 실크로드가 중국 시안에서 종료되고 한반도까지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가시화된 것이다. 과거 한국과 중국의 건설/중공업 기술 격차가 존재했을 때는 실크로드 개발 소식만으로도 한국의 기업들에게 더할 나위없이 호재였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 중국의 기업들이 경제적 과실을 독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 건설/중공업 기업의 AIIB 이후 주가를 보면 적어도 시장은 그렇게 해석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의 청년들에게 중동으로 건너 가라고 발언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 AIIB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이득을 취하기 위한 간절함으로 해석된다. 서둘러 인천과 웨이하이를 잇는 해저 터널을 건설하자고 제안한 것 역시 다소 서두른 티가 나긴 하나, 태평양 시대의 종점에서 다른 차를 갈아 타려고 뛰는 몸부림으로 보인다.

미국의 눈이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옮겨왔고, 다시 중국의 눈이 태평양에서 유럽/아프리카 대륙으로 옮겨가고 있다. 근 현대사에서 한국으로서는 처음 겪는 소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지리적 불리함을 극복하고, ICT 벤처 사업의 중심으로 우뚝 선 것처럼, 한국 역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저력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 지혜와 창의성을 모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