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인.

한 여인이 있었다.

그리고 그 여인에게는 두 아들과 두 딸이 있었다, 하지만 여인의 동생이 서울로 유학을 오기도 하고, 남편의 동생이 생활을 하기도 했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어찌도 반찬 투정은 심하던지… 남편은 경성제국대학에 재학중이던 동생이 6.25전쟁때 장교로 끌려가 돌아오지 않았던 탓에 공부라면 굳이 당신 집으로 끌어들여 공부를 시키기 시작했다. 억척같은 여인의 생활력 덕에 모두가 거뜬히 자라주었다. 아니 견딜 수 있었다.

자식들을 모두 내보낸 후, 이제 편히 생활을 할 수 있을까 기대감에 부풀만도 했지만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시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해 수십년간 생활했던 서울에서 파주로 생활 터전을 옮기게 되었다. 하지만 당신은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모두는 이를 당연시 했다.

제법 머리가 커진 손주들이 올 때면 익숙지 않은 낫으로 고구마며 감자며 죄다 캐다가 아궁이에 구웠다. 손주들이 설사 싫어할까봐 설탕을 뿌려서 갖다 주고 조심스럽게 손주녀석들의 표정을 살핀다. 손주는 KFC가 가고 싶다고 투덜거리며, 새까만 감자를 쳐다 보지도 않았다. 하루는 손주들끼리 싸움이 벌어졌는데, 싸움을 말리는 당신에게 둘째 녀석이 큰 형 편을 든다며 기어코 당신 가슴에 못을 박고 말았다.

남편은 익숙지 않던 농촌 생활 중, 희귀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뜨게 되었다. 모두가 당황했고, 눈물을 흘렸지만, 당신은 그토록 침착했다. 그리고 자신의 눈물로 키운 자식들에게 부담지우게 하기 싫다고, 서울에 있는 자신의 주택에 들어가 혼자 살게 되었다. 자식들이 용돈을 쥐어 줄 때면, 이를 곧 손주들 손에 안겨주었다. 철부지없는 손주녀석은 그 돈으로 메이커 옷을 사고 세상을 다 가진냥 좋아했다.

모처럼 외출해서 자식들 집에 갈 때면 꼭 지하철을 고집했다. 외식을 하자면, 돈들어간다고 그토록 싫어하며, 집에서 먹기를 고집했다. 안그래도 되는데…모두가 혀를 찼지만 동정심은 찾을 수 없었다.

그랬던 당신에게 암이라는 병이 찾아 왔다. 조용히 큰 자식에게 통장을 내밀었다. 그동안 자식들에게 받은 용돈과 자신의 생활비를 아껴 만든 적금통장이었다. 자신의 병원비로 써달라는 부탁까지 곁들였다. 손주 녀석은 그제서야 큰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아직 십분의 일도 모르면서…

그리고 그 여인은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첫 월급을 받던 날과 할머니 생일이 우연히 겹쳐 촌스럽기 그지 없는 빨간 내복을 하나 들고 뵈었을 때, 어린애인양 그토록 기뻐하던 표정과 저 멀리 영국으로 유학을 간다고 했을 때, 아픈 와중에도 어떻게 그렇게 멀리가냐며 얼굴 가득했던 걱정스런 표정. 이제 둘째 손주는 이 두가지 표정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장례식은 이미 끝났다. 다혈질 둘째 손주 녀석이 사실을 알았을 경우, 안절부절못하다가 결국 비행기표 끊고 달려갈 것이 뻔했기에, 둘째 손주 녀석은 바보처럼 허공에 매일 할머니의 안부를 묻고 있었다. 쯧.

할머니, 이제 좋은 곳에서 편안하게 푹 쉬세요. 정말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