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Pub 문화.

지역 커뮤니티 단위로 활발한 토론이 벌어져 영국의 정치는 펍에서 비롯되었다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는 잠시 접자.

정말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구나. 어느 펍에서던지 Ale을 시키면 그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를 내어준다. 기네스나 칼스버그 엑스포트보다 맛이 없을 확률이 높으나,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이 하이트나 카스, 나아가 이동막걸리를 먹겠다고 그러면 얼마나 이뻐보이겠는가?

안주는 안먹는다. 그저 맥주 한잔을 분신처럼 옆에 꼭 끼고, 그냥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다. 시시콜콜한 이야기에서부터, 뉴스 이야기도 많이 한다. 어제의 주된 주제는 내가 사는 곳 바로 옆에서 여자 경찰이 총에 맞는 사고가 났는데, 토니 블레어가 대책을 논의할 정도로 전국적인 큰 이슈가 되었다고 한다. 밤에 다니기가 점점 무섭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은 무대에서 연주를 한다. 참 멋들어진 재즈 연주가 흘러나온다. 남녀노소없이 그들의 경의로운 연주에 흥겨워 하고, 때로는 멋들어진 춤판이 벌어진다. 이부분이 참 신기했다. 세대간의 음악적 공감이라…어쩌면 나는 오래전에 이 부분을 잊고 살았지 않나 싶다. 한시대를 풍미하셨을 것 같은 그분들은 때로 직접 마이크를 잡고 노래도 하신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술자리에서 초콜릿을 한웅큼 깨문 것 같은 묘한 힘이 있다.

<토트넘의 광팬인 런더너 친구들. 왼쪽부터 귀족 풍이 팍 풍기는 해리, 지금까지 토트넘 경기만 380경기를 봤다는 광적인 축구팬 마크,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바른 생활을 자랑하는 착한 스티브>

영국에서는 축구를 보려면 집에 스카이를 달아야 하는데, 금액이 만만치 않다. 나같아도 안달겠다. 펍에 가면 내 방만만 스크린이 버티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팀의 유니폼을 입고,(우리 기숙사에는 친구들이 거의 런던 출신이라 토트넘의 팬이 대부분이다.) Come on boys!를 외치며, 멋들어지게 축구를 본다. 장면을 놓치고 화장실에 다녀와도, 배가 고파 부페에 가서 음식을 크게 한접시를 떠와도 관계가 없다. 옆 테이블 사람에게 방금 골 상황이 어땠냐고 물어보면 캐스터가 되어 마치 장면을 보듯이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나는 주로 손바닥을 주욱 펴서 TV를 가르키며, 항의하는 포즈를 주로 지으며, 축구보는 버릇이 있는데, 옆 테이블의 리버풀 저지를 입은 어르신은 내가 한없이 신기한가 보다. 그 앞의 아저씨는 자신의 아들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축구보는 내내 아들을 무릎에서 단 한순간도 내려 놓지 않는다. 물론 아들은 펍에서 맥주를 마시지 않는다. 콜라와 포테이토칩을 어찌나 맛깔나게 먹던지 당장 1파운드를 들고 나도 가서 칩을 하나 사왔다. 조심스럽게 부자의 모습이 너무 이뻐서 사진 한장 찍겠다고 부탁을 하고 포즈를 부탁했는데, 사진을 찍는 동안에도 아들에게 눈을 떼지 않는다. 갑자기 부모님이 보고 싶어 시계를 보니, 한국 시간으로 새벽 3시다. 핸드폰 충전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자중해야지.

펍이 바로 인생이다. 최근에 본 영국 영화 그린스트리트 훌리건과 풋볼 팩토리를 보면 영화 씬의 1/3이 펍일 정도로 그들은 펍에서 태어나 펍에서 죽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을 찍는 나를 어떤 어르신이 바라보시기에, “tourist!”라고 말하며, 씩 웃자, “it’s alright! welcome to England!”를 외치던 어르신의 미소가 잊혀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