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공부하는가?

DSCF6177.jpg고3이 지날 무렵 다시는 책을 열지 않으리라는 어리석은 다짐을 했다. (당시 읽었던 대부분의)책은 진학을 위한 기술이라고 여긴 까닭이다. 물론 단순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에 대한 지루함도 원인이었지만, 질풍노도의 시기 굳은 마음가짐까지 가지게 된 건 나의 천성적인 게으름 탓이었다. 머리쓰는 일없이 분수를 알고 이에 맞춰 살아가는 삶을 갈망했는지 모르겠다.
‘왜 공부하는가?’는 나의 천성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일깨워주는 에세이다. 전직 국회의원이라는 저자의 커리어에 다소 냉소적으로, 때로는 팔짱을 끼고 읽기 시작했지만, 그녀의 진솔한 경험담에 이내 곧 마음을 열 수 있었다. 독후 나의 천성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는 과장된 평을 내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내 삶에 대한 주인의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주었다.

저자의 세계관은 다소 우울하게 시작한다. 직접 겪은 남녀차별과 인종차별 뿐만 아니라, 넌지시 겪은 정치적 서열 경험으로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단언한다. 더욱 잔인한건 불공평한 세상앞에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막강한 세상 앞에 당당해지라고 요구한다. 세상이 나의 기를 꺾으려고 하고, 내가 뼈저리게 모자람을 느낄수록 더욱 고개를 들라고 외친다. 어릴적 나는 누구에게도 자신감 측면에서는 지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는 사실 자신감이 아니라 사실 속빈 강정이요, 우격다짐이었다. 마치 순수와 순진의 차이일까? 일의 scope가 넓어지고, 세상의 난이도가 게임처럼 증가하며 난 일시에 하룻강아지가 되어 버렸다. 나아가 세상은 그다지 내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의기소침해졌다. 어쩌면 고3때처럼 그냥 분수대로 살자고 되내었는지도 모르겠다.

해법은 공부이다. 마스터가 되겠다는 목표로 일도 좋고, 취미도 좋다. 딱 일년만 미쳐본다. 결단이 어려울 수 있지만, 더욱 중요하건 분위기를 잡고 이를 독하게 지켜나가겠다는 의지이다. 습관이 들고 자연스럽게 중독이 되면, 세상앞에 당당히 검증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운이 좋으면 기회를 잡겠지만, 반대의 경우에도, 내안의 역량이 쌓이게 된다. 세상은 잔인하지만, 자비롭게도 무한한 삶의 옵션을 준다. 마스터가 되고 나면, 다른 문이 열리고 또다른 시나리오를 집필할 수 있다. 스트레칭을 하듯 나는 유연해지고 내 삶의 가치는 점차 명확해진다.

실천하자.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전처럼 팟캐스트도 열심히 듣고 세상의 소식에 귀를 쫑긋 세우자. 내 가슴을 설레게 했던 대학교 강의를 iTunesU에서 찾아봐야 겠다. 아티클은 내가 저자의 생각을 활용해 책을 쓸 것이란 마음가짐으로 독하게 읽자. 어릴적 물리적 수명은 점차 길어지나 기능적 수명은 짧아지는 사회 변화 속에서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 기대했건만, 나태해진 현재 나는 패러독스 안에 갇혀 버렸다. 공부는 왜 하는가? 나의 가치를 명확히 밝혀 보자. 그리고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