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스의 시대

바야흐로 ‘믹스’의 시대이다. 굳이 신동엽이 출연한 맥키스 광고를 떠올리지 않아도… 고개를 들면 사람들이 섞기에 얼마나 빠져있는지 느낄수 있다. 다양한 하우스 음악을 조합해서 멋진 음악셋을 만드는 DJ들이 각광을 받고 있다. CD나 LP에 갇혀 있는 음악들이 분위기에 맞춰 섞다 보면, 소위 말해서 음악이 “살아난다”. 어쩌다 한잔씩 즐기는 싱글 몰트 위스키가 그림이 그려지는 맛이라면, 원액을 조합한 블렌디드 위스키는 상상에 없던 반전의 매력을 안겨준다.(물론 폭탄주에 들어가는 임페리얼은 안타깝게도 예측이 가능하다.) 생각과 미각의 뒤틀림에 대한 갈망으로 ‘마스터 블렌더’라는 위스키를 섞는 직업이 주목을 받는 것이 아닐까? 기존의 패션을 재해석하고, 디자이너 옷들 경계에서 새로운 가치를 제공해주는 편집샵은 백화점에서 가장 핫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섞는 것이 트렌드라는 주장의 예시는 설명하자면 입이 아플 지경이다.
통섭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믹스’가 주류로 떠오르게 된 원인을 조심스럽게 고민해본다면 풍성해진 ‘소스’가 아닐까 싶다. 폭스콘을 통해 개런티된 대량 주문을 하지 않아도, Alibaba를 통해 중국에서 생산된 소량의 힌지, 노트북 케이스를 소액으로 주문이 가능해졌다. 제조업자가 국경을 넘어 다양한 소스를 경제적으로 활용하는 아웃소싱의 대중화가 이루어진 셈이다. 또한 과거 저작권 보호 영역에 있던 무형의 ‘소스’들이 점차 ‘오픈’되고 있다. 사용자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해 소스가 다양해지고, 양질화되어 ‘섬리’처럼 고등학생도 기존의 소스를 조합하여 쿨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한발 더 나아가 포토샵이나 드림위버와 같은 고액의 소프트웨어가 없어도, 오픈소스 프로그램만으로 소스를 손쉽게 ‘조합’이 가능해졌다. 마지막으로 소스가 규격화/데이터화되고 있다. 최근 가장 관심있는 아두이노 프로젝트(집에 있는 보일러를 스마트폰으로 제어해보고 싶은 욕심에…)가 성공한 것은 쉴드간 호환성이 높아, 확장이 손쉬운 것이 이유중 하나이다. 와인이나 위스키의 수많은 테이스팅 노트로 많은 경험의 영역이 수치화되었고, 검색이 용이해졌다. 소스의 숫자는 늘어났는데, 활용이 더욱 신속해진 이유이다.
더이상 창의력이 창조의 충분조건이 아닌 믹스의 시대… 셔츠나 운동화를 사도 나만의 색깔, 나만의 디자인을 찾는 개인화된 상품에 대한 수요 확대로, ‘믹스’의 영향력은 더욱 확대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