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란티노의 메시지

Django8대놓고 인종차별에 대해 디스를 한다. Ku Klux Klan의 형성에 대한 조롱은 이 영화의 백미였다. 장고는 정체성에 눈을 뜨며, 백인들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사랑을 쟁취해나간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 이은 두번째 반-인종차별 영화다.

불과 몇 년전만 해도 낯설게 느껴졌던 주제가 흥미롭게 다가온 건 최근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전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네오나치즘의 영향일 것이다. 일본의 아베 정권은 보수주의자들의 한국인 혐오를 부추기고 있으며, 한국인은 중국/동남아시아 출신 외국인에 대해 거친 언행을 일삼는다. 몇일전 식당에서 한 아저씨가 “연변이야?”라고 하인다루듯 종업원에게 묻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왜냐하면 삼성전자가 소니/히타치의 파이를 빼앗아갔고, 나의 일자리를 중국인들이 훔쳐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회가 경쟁이 치열해지고, 일부 직업이 창출되는 밸류의 상당 부분을 독식하다 보니, 반대로 상대적인 박탈감은 커졌다.

빼앗긴 들에 봄이 오기 위해서는 분노해야 한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뭉쳐, 피부가 다른, 언어가 다른 이들을 배척하는건 실행이 용이할 뿐만 아니라, 컨센서스를 이루기 좋다. 배설 놀이를 통해 박탈감을 위로하려 한다. 이러한 유치한 놀이가 염려스러운 것은 앞으로 세계는 더욱 하나가 될 것이고, 더욱 사람들을 경쟁으로 몰아넣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를 디스할 수 있는 무기가 없다. 민족주의를 대신할 가치관이 현재 없다.

결국 타란티노가 피범벅으로 복수의 카타르시스를 우리에게 안겨준건, 장고의 권총을 찾으라는 메세지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