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사키 위스키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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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두번째로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담았다. 버킷 리스트를 지우기 위해서다. 도쿄역에 닿자 마자 ‘다카사키’라는 인구 37만 정도의 중소 도시를 향했다. 신간센으로 한시간이 조금 안되는 거리로, 다카사키는 우리나라로 치면 전주같은 평화로움이 가득한 전원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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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호텔에 짐을 내려놓고, 점심을 간단히 먹은 후, 향한 위스키의 성지, ‘Bar Misty’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도시 전체를 걸어다닐 수 있는, 인구 37만의 작은 도시에 이런 보물같은 위스키바가 있는게 마냥 신기하다. 참, Open 간판이 부쩍 반가웠다. 문닫았으면 어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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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 내부는 아늑하다. 약간의 시가/담배 향과 오붓하게 둘러 앉은 사람들의 속삭이는 대화 그리고 다소 꼿꼿해 보이는 바텐더가 맞이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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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타인과 같은 블렌디드 위스키는 스코틀랜드(심지어 미국 같은 지역에서도) 증류소 곳곳에서 생산된 위스키를 적절히 버무려 특정 맛만 구현하면 되므로, 생산량을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싱글몰트 위스키는 증류소 한곳을 고집하여 생산량이 한정될 수 밖에 없다. 더욱이, 숙성에 십여년이 소요되므  수요를 예측해서 생산을 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명품 맥캘란은 1874년 이후, 스페인산 쉐리와인 오크통을 고집했다. 그러나 1년에 고작 65-70통 밖에 구할 수 없는 오크통으로는 전세계, 특히, 중국에서의 급격한 수요 증가를 감당할 수 없었다. 오크통 수급을 위해 와이너리를 인수하기도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공급을 늘리기 위해서 전통을 포기할 수 밖에 없다. 최근 출시되는 맥캘란은 12년산 혹은 15년산을 표기하되, 언제 병입이 되었는지를 표시하지 않는다. 심지어 무연산으로 몇년 숙성되었는지 조차 표시하지 않는 맥캘란이 출시되고 있다. 대량생산으로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가치가 있다.

(참고: 중국인 위스키 한잔에 1,200만원 구입)

과거 향수를 간직한 맥캘란의 올드보틀은 단연 눈에 띄었다. 바텐더 오너님은 올드바틀을 내시며, 각 12년산을 비교 시음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올드보틀은 피트감이 다소 약하지만, 좀더 거친 느낌이다. 쉐리의 달콤함이 단연 돋보이며, 목넘김은 매콤할 정도로 스파이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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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이 길었다. 다카사키까지 날아온 이유는 바로 이 녀석 때문이었다. 메뉴판에도 없는 이 1951년산 맥캘란을 혹시나 바텐더 오너님이 내어 주지 않으면 어떡하나 조마조마했지만, 서울에서 극성스럽게 왔다는 애교에 씩 웃으며 한잔 내주신다. 절대 두잔은 안된다. 왜냐하면, 이제 51년산 위스키는 더이상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서핑을 해보니, 홍콩 위스키샵에서 해당 상품이 3만불이 넘게 한병 팔리고 있다.) 고작, 1만엔에 귀한 곡주를 맛보았다.

51년 맥캘란이 혀에 닿자 꽃향기가 피어났는데, 입에 머금고 있으니 스파이시함이 기도까지 퍼진다. 정말 맵다. 그런데 목넘김은 의외로 이렇게 부드러울 수 있을까 싶었다. 아마 오픈한지 시간이 지나 알콜이 다소 증발한 영향도 있을 것이다. 넘기고 난 이후 입천장에는 잉크향과 가죽향만 남을 정도로 드라이했다. 황홀한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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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은 67년에 병입되어, 92년에 세상에 나온 25년산 맥캘란 애니버서리 몰트이다. 가격은 74년 병입-99년에 나온 녀석이 3,500불 정도니, 최소 1만불은 하지 않을까? 5천엔에 한잔 맛보았다.

25년 맥캘란 애니버서리 몰트는 코를 들이미니, 꽃가게에 왔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꽃향기가 쉐리향과 어우러져 자극했다. 향이 어마어마하다. 피트향이 거의 없는데, 어떻게 향기가 이렇게 강할 수 있지? 신기하다. 입에 머물고 있으니, 초콜렛 맛이 우러난다. 목넘김은 역시 부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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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쉐리향 쓰고이 쓰고이를 계속 외치니, 후배가 추천해준 전설의 위스키. 13년 맥캘란 레전드는 캐스크스트렝스의 강력함 속에 스파이시함이 코끝을 찌른다. 13년산이 무색할 정도로 쉐리향이 강력하다. 쉐리오크통 숙성의 진수를 맛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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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쉬어가며, 내가 마신 위스키를 눈으로 감상하는 시간. 35년간 한 자리에서 바를 운영하고 있는 바텐더 오너님께 경의를 표한다. 첫인상은 다소 깐깐해보였으나, 시간이 지나자 영락없는 자상한 형님이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일방적으로 반했다. 맥캘란 맛이 변해서 요새 나온 맥캘란 상품은 취급하지 않는다는 코멘트가 어찌나 쿨해보이던지. 심지어 얼음을 직접 깎는 손짓마저 존경심을 불러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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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의 권유로 마시게 된 클리네쉬. 무려 27년산이다. 약간 과일쥬스 같은 포도향이 코를 진동시키며, 혀를 긴장시킨다. 어라? 그런데 막상 혀에 닿으니 어마어마하게 부드럽다. 아마도 캐스크 스트렝스를 마신 직후의 영향인듯? 목넘김 이후에는 마치 사케를 들이킨 것 처럼 깔끔한 드라이함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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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위스키는 꼭 피트향으로 마무리를 하고 싶다. 마지막에 선택한 라가불린 21년산. 향이 엄청난 캐스크 스트렝스인데, 의외로 쑥쑥 넘어간다. 향-첫맛-목넘김. 뭐 하나 쏠림이 없는 완벽한 발란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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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텐더 오너님이 서비스로 쉐리와인을 한잔 주셨다. 1929년산인데, 난파당한 배에서 발견된 귀한 녀석이다. 바닷속에서 오랜 세월을 겪으며, 머금없던 진한 초콜릿향을 아낌없이 내뿜었다. 달달함으로 다카사키에서 잊지 못할 밤을 마쳤다. 이를 가능하게 해준 후배 P군에게 진심어린 감사의 뜻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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