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는 습관

이기는 습관회사원이 아티스트가 될 수 있을까? 아인스타인이 바이올린을 기막히게 친 이야기 말고, 본연의 업무에 있어서 말이다. 과연 일이 예술(Art)가 될 수 있을까?
월급쟁이의 본질적 의문이다. 미술품이나 건축물 등이 오랜 시간 실력을 쌓은 결과물이라면, ‘일’이라는 것은 회사의 전략/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던가? 일이 끝나고 나면 남는 것이 무엇일까?

‘이기는 습관’에서 저자는 오랜 기간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당당하게 일이 예술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단, 일을 대하는 태도에서 과정을 중시한다면 말이다.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작품 제작 과정을 알게 되면, 절대 자신을 천재라고 부르지 못할 것이라 했다. 화려한 명작(Masterpiece)의 뒤에는 집요함과 철저함으로 오랜 시간 점철된 과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나의 경우에는) 일의 다수는 결과 지향적이었다. 대다수의 일은 그때그때를 넘기기 위한 기술에 가까웠다. 자연스럽게 하나 하나의 일들이 자산화가 되어 나의 실력이 되기보다는 그저 지루한 개별 퍼포먼스에 지나지 않았다. 저자는 나의 이런 태도에 대해 바탕없는 재기발랄함은 수명이 짧다며 꾸짖는다. 나아가 변변찮은 재주를 믿고, 교만하게 굴다가는 발전이 없다고 독하게 이야기를 한다. 뜨끔하다.

자산화를 위한 첫걸음은 실패 및 시행착오 노트이다. 상사에게 머리가 아프도록 깨지거나, 혹은 나의 기획안/제안 등이 설득이 되지 않았다면 실패 사례다. 본인의 아픈점을 인정하기는 정말 어렵다. 그러나 뼈가 시리도록 사례를 기록해놓고 곱씹어 보아야 적어도 실패 사례가 반복되지 않고, 궁극적으로 실패를 발판 삼아 더 큰 성공을 꿈꿀 수 있다. 성공 뒤에 자리잡고 있는 실패(어머니라 불리우기도 하는…)를 나는 얼마나 하찮게 생각하고, 망각하기 바빴던가?

두번째는 한우물을 파는 것이다. 저자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자격증같은 얄팍한 스킬이나 화려한 커리어를 찾아서 철새처럼 이동하지 말라. 결국 실력이란 학습부터 성취까지의 싸이클을 얼마나 많이 경험했는지에 따라 차이가 발생한다. 한눈을 팔면, 내가 가고자 하는 트랙의 Component들을 채우는데 시간이 그만큼 오래 소요된다. 참, 이를 위해서라면 한우물을 다 팠을 때인 10년, 20년 뒤의 모습이 정확히 그림이 그려져야 겠지.

세번째는 집요함이다. 나는 웨인 루니의 플레이스타일을 좋아한다.(비록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속했지만…나는 토트넘 팬이다.) 그는 그라운드에 들어서면, 눈빛이 변해서 공을 향해 달려든다. 물론 루니가 훈련을 열심히 하고, 상대편 선수의 움직임에 대해 철저히 연구했기 때문에 그런 과감함이 나올 수 있었겠지만, 그는 남다른 집요함으로 공이 빼았기고, 이쯤 쫓아가면, 되었겠다고 싶을 때 기어코 한발 더 달려들어 태클을 한다. 결국 집요함에서 비롯된 한끝차이가 그를 세계적인 선수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일도 마찬가지이다. 이슈가 발생했을 때, 이를 쪼개고, 자료를 수집하여 원인을 파악하여 이쯤 되었다라는 생각이 들 때, 기어코 한 depth 더 파고들어, 이슈를 한번 더 쪼개고, 수집된 정보를 나의 시각에서 한번 더 검증할 때, 일에 완벽성이 더해질 수 있다.

마지막은 기본이다. 기본에 충실한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일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를 포함하여 단정함을 가진다. ‘나의 불행은 잘못보낸 시간의 보복이다.’라는 속담을 명심하고, 급변하는 시간에 대해서 관대해지지 않는다. 아침 시간부터 자기 업무시간에 철저히 집중한다. 한편, 한가지 일만 집중할 수 없는 현대 업무 환경상(이메일, 쪽지, 전화 등이 나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멀티태스킹에도 능해야 한다. 탁상공론과 숫자가 아닌 현장의 목소리가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 나의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티끌까지도 챙긴다. 공자님 말씀처럼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기본’을 그동안 부끄러움이 들 정도로 외면해왔다. 아마도 편안함을 쫓으며, 내 자신에게 냉정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지극히 한국적이다. 현재 온라인에서 넘쳐나는 미국식/실리콘밸리식 회사 생활법에 더 흥미를 가지는 사람이라면, 목을 죄는 듯한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그가 현업에서 물러난지 꽤 되었으니, 구태의연한 충고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한 이들에게 회사 이름을 믿고, 우쭐대고 교만하지 말라는 직접적인 충고는 실질적으로 가슴에 와닿는다. 결국 일을 통해 궁극적으로 남길 수 있는 예술을 만들기 위해서는 큰 ‘점’을 둘 수 있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고, ‘점’을 이을 수 있는 ‘선’을 그리기 위한 통찰력을 필요로 한다. 위의 이야기는 점과 선에 대한 이야기다. 추가적으로 작가는 내면의 교양을 끊임없이 쌓기를 주문한다. 때로는 Contingency로 선이 다소 휘어서 이을 수 있는 임기응변도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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