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뒤에는 무언가 아쉬움이 항상 남는 법이다.
밀라노에서 돌아와 무언가 아쉬움이 가슴속에 남아 있었는데, 옆방 Phil이 피크 디스트릭트라는 국립공원에 가자고 한다. 스코틀랜드와 웨일즈를 제외하고 영국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곳이라고 하니, 귀가 솔깃했다. 한국에서 부모님이 그렇게 등산을 가자고 할 때는 꿈쩍도 안하더니, 밖으로 나오니 마음이 흔들린다. 이래서 효도가 무척이나 어렵나 보다.
얼마전 Amazon에서 충동적으로 구입한 Walking in Britain책이 선반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다. 흔히 상상하기 쉬운 등산이 아니라 하이킹 정도로 가볍게 올라갈 수 있는 완만한 지형을 자랑하는 피크 디스트릭트는 맨체스터와 노팅엄 중간에 위치하고 있으며, 노팅엄에서 대략 자동차로 1시간 40분 정도 소요된다. 정확하게는 Derbyshire주와 Staffordshire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일년에 대략 2200만의 관광객이 찾는 영국에서도 손꼽히는 등산의 명소이며, 이 숫자는 일본의 후지산을 방문하는 수와 같다고 한다. 암반천연수가 유명해 블락선이라고 하는 생수는 이지방에서 나오는 물로 만들며(물론 나는 수돗물을 마시거나, 한국에 비해 1/3로 값이 싼 볼빅을 마신다!ㅎ), 또한 화려한 꽃들도 유명하다. 오래전부터 산에 나무는 거의 없고, 산이 잔디밭으로 이루어져 가벼운 마음으로 올라갈 수 있는 명산이다.
이번 여행을 위해 타고갈 헤다의 자동차이다. 포드 사의 피에스타 모델로 앞에 그릴이 없는 단점이 있지만, 승차감도 매우 좋고, 무엇보다 더없이 로드트립의 기분을 만끽하게 해주는 멋진 자동차이다.
중간에 베이크웰이라는 도시에 잠깐 들러 우리들의 여행 계획에 대해 듣다. 어리버리하게 자다가 쫓아나온 나로서는 이것저것이 궁금했을 수밖에. 근데 내 이야기를 듣는 친구의 표정이 참.ㅎㅎ이곳에서 스콘(Scone)이라고 하는 영국 전통빵을 먹었는데, 크림과 딸기잼의 조화가 이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후에 이 맛이 너무 그리워 동네 스타벅스에 가서 먹어 보았으나 영 꽝.
드디어 도착해서 올라간다. 역시나 잔디밭으로 이루어져 꽝꽝 얼었는데도 오르기 참 쉽다. 제일 앞서 가는 이가 헤다, 그리고 뒤에 저승사자같은 친구는 스튜.
영국와서 처음본 눈이다. 참 신기했던 것이 노팅엄에서 단지 1시간 정도 벗어났을 뿐인데, 이렇게 날씨가 달랐다는 사실이다. 엄연히 말하면 이것은 눈이 아니라 해일이라고 한다. 동그란게 분명 눈과는 모양이 달랐다.
오늘의 여행 멤버를 소개합니다! 우리 기숙사에 사는 모두 고마운 친구들. 산 정상에 아무도 없어서 제일 앞에 보이는 친구가 타이머를 맞춰놓고 얼릉 달려와서 사진을 찍었다.
덩치 큰 친구 스튜. 추워서 후디 모자를 눌러써서 그런지 저승사자같이 나왔다. 순수하고 착한 런던 청년이다. 키가 굉장히 크다.
헤다와 필은 눈싸움 하느라 정신이 없다. 얼마만에 해본 눈싸움인지..여기 오니 나이를 잊고 살게 된다!ㅎ
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마을의 전경. 그동안 답답했던 마음이 싹 풀리는 느낌이다! 고마워요! 친구들~;)
중간쯤에서 올려다본 산 정상의 모습. 굉장히 느낌이 독특한 등산이었다.
느낌이 독특했던 까닭은 우리가 사실 사유지를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곳은 양을 키우는 목장이었다. 저 밑에 보이는 집이 바로 이곳의 주인집. 꽤 멀리 도망왔으니 주인이 쫓아올 일은 없을 것 같다.
후에 주인이 정찰하는 모습이 발견되어 우리모두 고개를 숙이고 숨었는데, 올려다보니 이렇게 멋진 풍경이 펼쳐질 줄이야. 양들이 저녁이 되니깐 슬쩍 경계를 하며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합성의 오해를 살 것 같아 포토샵으로 어떤 처리도 하지 않았다!ㅎ
참 영국애들 펍을 좋아한다. 오늘도 마무리는 펍에서. 따뜻한 불을 쬐며, 양말, 신발을 전부 말릴 수가 있었다. 평소에는 몰랐던 녀석들의 꿈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고, 영국의 미래에 대한 기대도 들을 수 있었다. 마치 엠티온 느낌.
바로 이 사진 이군요. 오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