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학의 내신 무용론을 가지고 갑론을박 시끄럽다. 몇 가지 정부의 주장에 대해 반박을 해보고자 한다.
수능 시험의 비중을 줄이고, 내신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
수능과 내신의 차이는 무엇인가? 대학 수학 능력 시험이란 고등학교에서 얼마나 착실하게 공부하여, 대학에서 수학할 능력이 있는지를 검증하는 시험이다. 정부에서 출제하는 시험으로 전국의 모든 고등학생들이 같은 날, 같은 시험을 치룬다. 반면 내신은 전국의 고등학교, 선생님 별로 시험이 다르며, 평가 방식도 다르다. 언론 보도를 통해서, 고등학교별 경쟁을 통해 무리한 100점 남발로 내신 무용론은 이미 밝혀졌다. 과연 두 시험 중에서 대학이 평가잣대로 세우기에 어느 시험이 더 타당성이 있는가? 대학은 심지어 두 시험 모두 평가 잣대로 적절치 않다고 하여, 자신의 학교에 정상적으로 입학하여, 수학할 수 있는지 여부를 평가하는 본고사를 도입한다고 했더니, 노무현 정부는 3불 정책을 내세워 이마저도 안 된다고 한다. 특수 목적 고등학교 내신 20등과 일반 고등학교 내신 20등이 학력차이가 난다는 것은 세상 사람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특목고는 본연의 목적을 상실한 지 오래다.
정부는 글로벌 시대에 외국어의 중요성을 부르짖으며, 한편으로 외국어 고등학교 죽이기를 강행하고 있다. 그 근거로 대다수의 학생들이 어문계열이 아닌, 타 과에 진학한다는 것이 로직의 핵심이다. 외국어는 학문의 목적인가 기술인가? 그 결정은 전적으로 개인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해서 어문계열로 진학할 시에는 비교내신제를 적용받고, 타과로 진학할 시에는 내신의 상대적 불이익을 기꺼이 감수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이 인가를 해준 이상, 커리큘럼 가이드라인대로 외국어 수업이 충실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여부를 감사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결과론적으로 대학 진학률을 두고 외고를 불법 사립학원으로 몰아가지 말라는 이야기다. 필자가 고등학교에 재학할 당시, 대학 진학과 상관없었던 주당 평균 14시간의 중국어 및 영어 수업과 원어민 회화 수업은 내세울 것 없는 필자의 커리어에 중요한 바탕이 되고 있으니, 비록 어문계열로 진학하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 ‘특수 목적’은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대학은 좋은 사람 뽑을 생각하지 말고, 교육 잘 시킬 생각을 하라.
사실 노무현 대통령의 이 발언을 듣고, 쓴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나아가 지역에 따라 대학을 배정받는 대학 평준화를 이끄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자연스럽게 주요 대학이 없는 강남 지역이나 목동 지역의 아파트값은 떨어지지 않겠는가? 아울러 지방고 학생들도 서울 올라올 일이 없으니, 수도권 과밀화도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다. 덧붙이자면, 외국에서 대학을 나온 ‘경쟁력있는’ 학생들과의 비교를 우려하여, 취업에 있어서도 평준화를 제안한다. 단숨에 수많은 사교육이며, 조기 유학 등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런 유토피아가 실행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우리는 고등학교-대학교-취업-승진 등으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경쟁 속에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일시적으로 경쟁을 없애, 국민들을 잠시나마 환각 상태로 몰아갈 것이 아니라,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는 풍토를 만드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특수 목적 고등학교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높다면, 그들을 끌어내릴 것이 아니라, 이들의 교육 방식을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하여, 위성 혹은 인터넷 교육을 통해 지방의 학생들도 그 교육의 혜택을 받게 하고, 일반 고등학교도 특화하여, 특수 목적 고등학교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공정한 경쟁의 풍토를 심어주어라. 불과 몇 년 뒤 경쟁의 정글속으로 뛰어들 어린 학생들에게 남을 시기하는 방법을 먼저 가르치면 안된다.
대학의 자율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대학이 우수한 인재를 유치하고자 하는 이유는 기업들이 우수한 신입 사원을 채용하고자 하는 이유와 지방 자치 단체들이 외국 자본을 유치하고자 하는 이유와 근본적으로 같다. 삼성전자와 맥킨지가 뽑고자 하는 인재상이 다르듯, 대학이 뽑고자 하는 인재상도 다를 수 밖에 없다. 취업, 글로벌 특화, 기초 학문 우수자 등 각 대학의 이상에 걸맞는 인재를 대학이 직접 뽑을 수 있도록 스크리닝 할 수 있는 자율성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대학은 직접 선발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자신의 이상과 맞는 학생을 어떻게 선발할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정부에서 일관된 학생 선발 원칙을 내세울수록 역설적으로 서울대-연고대의 서열화는 더욱 고착화될 수 밖에 없다. 나아가 자신의 이상과 맞지 않는 학생들의 지속적인 유입은 대학의 경쟁력 악화로 이어져, 당장 국내 취업 시장에서 외국 대학 출신 유턴 학생들에게 밀릴 수 밖에 없다.
전주에서 태어나, 서울의 경기고로 진학, 서울대로 진학했던 한덕수 국무총리는 대학 재정 지원 중단이라는 방법으로, 대학의 내신 무용론을 압박했고, 지방 비평준화 고등학교였던 청주 고등학교-서울대 출신의 김신일 부총리는 교수 임용 숫자를 줄인다는 내용으로 대학을 압박하고 있다. 사실 압박이라기 보다는 유치한 협박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이 아시아의 금융 허브, R&D 대국을 꿈꾸고 있다면, 아니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젊은이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평준화가 아닌 경쟁이 해답임이 분명하다. 그대들이 가진 것은 인적자원 밖에 없는 대한민국에서 진정 교육 백년 대계를 생각한다면,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사심을 마땅히 버려야 할 것이다.